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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가맨에 나온 '가수 양준일'의 인터뷰를 보고, 90년대 그 시절을 떠올렸다
    삼 십 대 인 사 이 트 2019. 12. 11. 10:55

    출처 : KBS 쇼 토요특급 / 출처 : 문화뉴스(http://www.mhns.co.kr)

     

    양준일이라는 가수가 화제다.

    슈가맨3에 나왔고, 사람들은 그의 스타일과 노래에 열광했다.

    멋진 퍼포먼스를 선 보였다.

     

    하지만 그가 데뷔했던 때는 90년대.

    미국에서 와서 한국말이 서툴렀던 그는 갖은 언어차별과 이유를 할 수 없는 방송불가 판정, 비자불허가 등으로 그는 한국을 떠나야 했다.

     

    양준일의 인터뷰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90년대 초,

    아직 어릴 때 였지만, 가장 머리가 좋았을 때라 그런가 생생히 기억나는 것들이 많다.

     

    90년대 초 사회적 분위기는 국딩(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에게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전체주의와 단체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적 분위기는

    관료주의와 더불어

    외부적인 것과 새로운 것, 개인주의에 대해 배타적인 정도가 아니라 배척의 수준이었다.

     

    청개구리 기질이 다분했던 나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꼬맹이임에도 불구하고 숨막히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것이 아닌

    외국것들은

    단지 우리나라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당했다.

    영어가 쓰여진 티셔츠나 학용품들은 학교에서 금지 당했고,

    외제차나 외제물품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엄마는 성능 좋은 미제 세탁기를 사서 혹여 사람들이 볼까 다용도실에 꽁꽁 숨겨 놓으셨던 기억이 난다.

     

    다른 것은 나쁜거야

    튀는 것은 나쁜거야

    우리와 다른 너는 나쁜거야

    가만히 있어, 네가 참아, 다 똑같아야지, 조용히 해.

    팽배한 배타성으로 꽁꽁 싼 못된 집단의 분위기......

     

    '개성주의'라는 말도 조금씩 대두되기도 했지만,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왕따 시키고 배척하는 것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만연했다.

     

    의견이 다르다는 건, 사는 모습이 다르다는 건, 외모가 다르다는 건

    존중받아야 할 것이 아닌

    짓밟혀야 할 대상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드넓은 흙바닥의 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월요일 아침.

    태양은 내리 쬐었고,

    전교생은 뜨거운 뙤약볕을 그대로 견디며.

    교장 선생님의 조례를 듣고 서 있었다.

     

    당시 한 반에 40명정도 되었으니, 전교생이 모이면, 말 다했다. 

     

    우리는 모두 차렷자세를 하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선생님의 눈총과 불호령을 받아야 했다.

     

    몸이 약한 친구들은 픽픽 운동장 바닥에 쓰러졌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마냥 여겨져서

    다음주 월요일에는 어김없이 운동장 조례가 열렸다.

     

    매 주

    월요일 마다

    어린 나는 생각했다.

    이 무슨 쓸데 없는 시간낭비란 말인가.

    왜 말도 느려터진 늙다리의 도움이 안되는 저따위 말같지도 않은 말을

    여기 서서 들어야 하는가.

    왜?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왜?

    당신들은 누구고,

    왜 우리는 이런 고문을 받아야 하지?

     

    아주 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학교라는 집단을 경험한 학창시절속에

    집단주의라는 '소리없는 학대'를 무수히 경험했고,

    학교에서 모범생이었던 것에도 불구하고, 학교라는 시스템이 너무 싫었고,

    부조리에 대한 원망은 가슴속에 크게 키워졌다.

     

    단순히 말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왜......?

     

    필요하지 않은 말을 왜 하고,

    필요하지 않은 일, 거치레는 왜 계속 하는 거며,

    모든 사람에게 왜 똑같은 행동과 생각을 강요하며,

    다르고 튀는 것은 왜 나쁜 것인 지.

    어른들이 전혀 이해가지 않았다.

     

    그렇게 90년대는 지나갔다.

     

    세월이 지나 2020년을 앞두고 있다.

    캐나다에 살게 되었다.

    캐나다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나대로 살 수 있다는 거였다.

    나대로 사는 것에 대해 존중받는 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 각국의 각 민족이 모여사는 나라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이 다른 역사와 문화 사회에서 자랗기에

    그 사람의 행동양식과 문화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밖에 없다.

    (전체주의를 강요할 수 있는 대집단이 있거나 긴역사가 없음.)

     

    타인이 점심으로 빵을 먹든, 국수를 먹든

    그 사람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이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다.

    (각자 자기 식성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식성과 상관없이 같은 음식을 배급받는 급식문화가 불가능하다.)

     

    회사생활 하면서 먹기 싫은 국밥을 부장님이 좋아하셔서 점심시간마다 먹으러 가야했다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내 취향을 말살당하는 전체주의.

    2019년 여전히 한국에는 존재한다.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에 대해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그 의견은 이런점은 좋지만 이런점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 내가 생각하는 최선은 이러이러한 방법인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라고

    초딩때부터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최선의 결과로 도출하는 법을 훈련시키는 북미와 유럽과 다르게.....

    다른 의견에 시비나 싸움을 붙이고,

    개싸움이나 벌이는 정치판.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 받는 문화의 캐나다에서 보니

    여전히 한국은 집단으로 뭉뚱그려 사고하는 것은 여전하다.

     

    너 무슨일을 하니? 라는 간단한 질문에

    캐나다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물어본 것이기 때문에 ' 난 모기지 대출 전문가야' 라는 식으로 대답을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 난 현대에 다녀'라고 대답한다.

     

    현대에 다니든 삼성에 다니든 그 직장을 떠나서도 자신의 직업은 자신의 일로서 여겨지는 캐나다 사람들은 그 조직자체를 자신의 직업으로 말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조직이 곧 본인'이기 때문에 대답이 그런 것이다.

     

    한국이 유독 유행에 민감한것도

    단체주의에서 혼자 튀거나 혼자 다른 것을 원하지 않는 무의식 중의 사회적 질서를 따르는 것이라 생각된다.

     

    해외에 사는 사람으로서

    미국에 살던 교포 양준일씨가 90년대 초 한국에 들어가서 겪었을 정서적 충격이 이해가 된다.

     

    똑똑하고 재능많던 열심히 일하던 젊은 청년 양준일은

    사회적 부조리함과 미성숙함 속에

    이리터지고 저리터지며, 자신의 꿈을 키울 기회들을 묵살당하고 만 것이다.

     

    그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모두 경험해 보니 많이 변하기도 변했다.

    우리나라 그때보다는 참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뉴스룸에서도 언급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그 쓴 뿌리들은 남아 있다.

     

    해외에 살아보니

    개인이 개인으로서 인정받고 존중받는 삶이라는 것에 대해 온전히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를 성숙하게 만드는 거름이 되는 것이었다.

     

    예전에 쵸코파이에서 정을 주제로 광고를 해서 히트를 친 적이 있다.

    새벽녘, 환경미화원이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지나가는 청년이 환경미화원에게 초코파이를 건낸다.

     

    어릴때부터 이 광고가 몹시 불편했다.

    그리고 불편한 이유를 캐나다에 와서 찾았다.

     

    대가를 받고 정직한 일을 하는 것, 그것은 신성한 노동이고,

    그 노동을 통해 한달간 가족들과 먹을 것 입을 것을 사며 사는 것.

    현대의 성인이 삶을 꾸려가는 방식이다.

     

    그 대가가 적든 말든

    성실하게 선택한 일을 최선을 다해 책임감있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적은 대가를 받는 일은

    불쌍한 직업, 안 좋은 직업, 짠한 사람, 도와줘야 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고,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일하고 돈을 버는 사람들인데, 당당한 시민이자 사회의 일원인데, 왜 뭐가 불쌍하게 여겨야 한단 말인가?

     

    장애가 있어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고, 신체적, 정신적 병이 있어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

    부모가 버린 아이들,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일을 할 수 없는 노인들,

    이런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 아닌,

     

    성실한 시민들을 급여에 따라 불쌍하게 여기는 게 실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환경미화원이든, 운전기사이든, 식당주방일을 하든, 청소일을 하든 (보통 한국에서 미디어를 통해 하대 당하는 주요 직업들)

     

    캐나다에서는 자신이 성실히 일해서 떳떳이 돈을 버는 사람들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늘 당당하다.

     

    양준일씨의 팬클럽이 7000명이 있다고 하던데,

    정말 멋진 분들인 것 같다.

     

    영어를 쓴다고,

    다르다고 손가락질 받던 한 사람의

    그 다름을 좋아하고 존중했던 7000명일 테니 말이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살던 미국에서

    한국으로 와서 일을 하고 싶었던 것 뿐인 청년인데......

     

    한편으로는

    그런 어두운 시절을 지나

    요즘같은 시절도 살아본다는 게 감사하다.

     

    그 시절에 참고 참고 분노를 삭히고 삭히고

    이해되지 않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에 홀로 분개하던

    어린 내가

    이제 어른의 대열에 올랐다.

     

    적어도

    내가 어른 된 이 시절은

    누구를 만나든

    인간 대 인간으로 여기고,

    어리다고, 공인이라고, 나보다 적게 번다고, 외국인이라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대하지 말고,

    사람답게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통해 이 사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신

    가수 양준일 님께 감사합니다.)

     

     

    가수 양준일 님이

    30년 전 자신에게 쓴 영상편지로 이 글을 맺겠습니다. 

     

    네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을거야

    하지만 걱정 하지마

    모든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 밖에 없어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43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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